저작권

by Yun

이 포스트는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수강하는 김평수 교수님의 ‘저작권의 이해’ 문화컨텐츠 전공 과목의 기말과제 레포트로 제출한 것을 조금 각색한 것이다.
TL;DR 버전으로는:

저작권은 창작자의 수익과 권리를 보장한다는 제 기능을 잃었으며 오히려 사용자들에게 불편함만을 야기시키고 민주주의를 저해한다. 창작자들은 저작권이 아닌 다른 창구에서 수익 창출을 모색해야하며, 이를 위해서는 컨텐츠 사용자들의 전반적인 의식 개선 역시 필수적이다.


문화의 발전을 저해하는 저작권

저작권과 문화는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 특히 복사와 배포가 용이해진 디지털 시대에서 저작권은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해주는 한편, 자유로운 정보의 공유를 방해하여 문화의 발전을 저해한다. 저작권이 창작자로 하여금 더 많은 창작활동을 하도록 동기부여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불편한 사용성으로 인해 사용자들의 반감으로 컨텐츠 소비를 저하시키는지는 논란이 큰 주제다.

1. 저작권이 창작자의 권리를 보장하는가?

저작권이 저작자의 창작 동기를 고취시켜 문화를 발전시킨다는 주장은, 저작권으로 인해 창작자에게 금전적 보상과 저작물에 대한 창작자의 권리가 확립될 때 가능하다. 하지만 이러한 근거는 이미 고장난 것처럼 보인다.

1) 수익에 보탬이 되지 않는 저작권

The Cynical Musician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디지털 시대에서 음반판매로 인한 저작권 수입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Spotify를 통해 발생하는 수익은, 한 번의 스트리밍 당 약 $0.00029다. 미국 한 달 최저 임금인 $1,160을 벌기 위해서는 4백만 회 이상 스트리밍이 되야 한다는 의미다.
한국의 경우도 창작자와 실연가에게 돌아가는 수익은 파이의 매우 적은 부분을 차지한다. 저작권 유통 구조에 따르면, 현재 한국의 일반 음원사이트의 수익 중 가수와 연주자, 작사/작곡가에게 돌아가는 수익은 전체 수익의 15%도 되지 않는다. 이것은 대부분의 수익이 거대 배급사나 유통 채널 관리자에게 돌아간다는 의미다. 현재 저작권은 저작인접권자와 유통사의 이익을 대변할 뿐, 실연자와 창작자의 생활 형편에 이바지하지 못하고 있다.

2) 실효성 없는 저작권

저작권법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제시하는 저작권 보호를 위한 여러 방안들은 실효성이 없다. 그러한 방안들은 사용성을 불편하게 할 뿐, 실제로 불법 유통을 막지 못한다.
저작권법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건축학개론은 이미 막대한 피해액[1]을 냈다. 피해액에 대한 보상을 저작권 컨텐츠 유포자에게 청구하는 것은 궁극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저작권을 옹호하는 자들의 논리에 따르면 애초에 컨텐츠 유포가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최선의 방안인데, DRM과 같은 기술적 제약은 실효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해킹이 불가능한 DRM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저작권 보호를 위해 열심히 물밑작업을 한 영화들도 결국 캠코더로 녹화된 버전으로라도 유통되기 마련이다. 음악의 경우 정 안되면 직접 녹음하는 방법도 있으며, 텍스트의 경우 받아 적으면 그만이다. 기술적으로 가능한 것을 법으로 막으려 들면, 자동차 산업의 발전을 막았던 적기조례법과 같은 행보를 밟을 것이다.

2. 공유의 불가능

문화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보나 컨텐츠를 꽁꽁 싸매고 있기 보다는 그것을 다양한 사람들에게 도달시켜야 한다. 특히 디지털 시대에서 인터넷이 갖는 진정한 가치는 쉽고 빠른 정보의 공유다. 사람들은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정보와 컨텐츠를 탐색하고, 영감을 얻고, 그것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교환하며 토론의 장을 만든다. 다양성은 민주주의 발전의 필수적인 요소지만, 저작권 보호라는 미명 아래에 정부 권력과 소수의 기업들은 다양성을 해치고 있다.

1) 저작권으로 인한 공포 분위기 조성

저작권 위반 처벌에 대한 공포는 사용자로 하여금 자유로운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블로그에 글을 써오고 있다. 그리고 얼마나 쉽게 나도 모르게 저작권을 침해할 수 있는지 알고 있다. 내가 쓰는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사진을 검색해 가져다 쓰거나, 배경에 음악을 삽입하는 행위 모두 저작권 위반 행위다. 이러한 지식이 없는 다른 사람이 무심코 저작권을 위반하게 되면, 상식을 넘는 금액을 요구하는 고소장에 겁을 먹게 된다. 보통의 경우, 실제 처벌로 이어지기보다는 기소 유예 등으로 타협되지만, 한 번 고소장을 받아본 사람은 그 이후로 겁을 먹고 블로그를 써나갈 수 없을 것이다. 저작권이 무서워서 사용자들의 창작과 목소리를 막는 것이다.

2) 사용성에 반하는 저작권

저작권은 컨텐츠의 이용을 불편하게 한다. DRM이 그 대표적인 예다. 나는 컨텐츠에 대한 사용료를 낸 것이지, 그 컨텐츠를 이 컴퓨터, 이 MP3 플레이어, 이 웹사이트를 통해서만 소비해야 한다는 논리는 최초판매의 원칙을 무시하는 처사일 뿐더러, 사용자에게 중복과금을 유도한다. 머라이어 캐리의 앨범을 직접 돈을 주고 구매를 했는데, 여기서 MP3 파일을 추출해 아이팟으로 듣는게 불가능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고 사용자들에게 불편함만 부과할 뿐이다.
더군다나 이러한 불편한 사용성은 저작권자, 아니 적어도 탐욕스러운 컨텐츠 배급사나 유통업자들이 일부러 의도하는 것 같아 보인다. 지정된 플랫폼이 아닌 다른 채널에서 이용하려면 또 돈을 내야 한다는 논리는 배급사들의 수익을 극대화시킨다. 그들이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해 지금껏 해온 노력의 일부만 투자해도, 배급사별로 구매자의 신원을 통합 관리해서 중복과금을 피하기 위한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소위 저작권 위반을 방지하기 위한 방지책이라는 것들은 직관적이지 못하다. 하나의 예로, 네이버에서는 블로그의 텍스트를 드래그 앤 카피(Drag & Copy)하지 못하는 것을 기본으로 설정(Default)해 두었다. 정말 ‘배끼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 사람이라면 직접 받아적거나 화면 전체를 찍어버리면 된다. 또 다른 예로는 웹하드 서비스의 검색 필터링이 있다. 웹하드 사이트에서 특정 키워드를 검색할 경우 ‘저작권 보호를 위해 해당 키워드를 검색할 수 없습니다.’라고 뜨는 경우가 있다. 사용자들이 웹하드를 해적행위만을 하기 위해 찾는 것은 아닐텐데[2] 이러한 검색어 필터는 보호 컨텐츠 이외의 다른 정보를 검색하는 것도 불편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러한 검색어 필터 역시 영민한 사용자라면 얼마든지 우회할 수 있다.[3] 실효성은 없으면서 사용성만 불편하게 한다.

3)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저작권

특히 디지털 시대에서, 저작권법은 정부나 특정 조직/기업으로 하여금 개인의 입을 막게 할 수 있는 훌륭한 핑계다. 원본성의 기준이 모호한 채로 적용되는 저작권법은, 사소한 핑계로도 개인의 표현물을 무너뜨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정부가 인터넷 컨텐츠를 차단할 권리 또는 기업이나 조직이 차단을 요청할 권리를 갖는다는 것은, 잠재적으로 정부나 기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묵살할 권리를 갖는다는 의미다.[4] 이것은 감시정부의 등장 가능성을 시사하며, 민주주의를 직접적으로 위협한다. 작년에 미국을 강타한 SOPA/PIPA 법안이 통과되지 못한 이유 역시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하기 때문이다.
저작권은 다양성의 결핍을 유발한다. 현 저작권법 체제는 자본력을 가진 거대한 배급사의 시스템에 종속되지 않는 이상, 폭발적인 마케팅 추진력을 얻기 힘들다. 거대 배급사가 막강한 자본력을 투자해 육성해낸 헐리우드 영화, 미국 팝 문화 같은 초국적 문화컨텐츠는 투자한 자본금 회수를 위해 전세계를 대상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인다. 각 채널들은 배급사들의 자본력을 바탕으로 획일화된 컨텐츠를 내보내고, 이는 전세계 문화의 동질화를 촉진시킨다. 문화 다양성은 건전한 민주주의를 위한 필수적인 요소인데, 현 저작권 체제에서는 다양한 색깔의 컨텐츠가 생산되기 힘들다.

4) 공공영역의 필요성

문화의 발전을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컨텐츠로부터 영감을 얻고 재창조해낼 수 있어야한다.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는 대단한 명작이다. 1968년에 개봉한 영화는 지금 다시봐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섬세한 영상미를 보여주고, 특히 AI(인공지능)가 인간을 공격한다는 영화의 플롯은 이후 모든 AI 영화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작권법의 이유로 인해 4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온라인을 통해 영화를 합법적으로 볼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내가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를 보고 받은 감명을 생각하면 개봉한지 40년도 더 된 영화가 저작권이라는 시스템 때문에 아직까지도 시청하기 힘들다는 점은 부조리하다.
한 시대와 문화를 구성하는 필수적인 요소는 경제력에 따른 분배가 아닌 공공영역으로서의 경험이 되어야 한다. 각각을 생각하면 파편적이지만, 터미네이터 II에서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I will be back’이라고 외치는 장면, 우마 서먼이 펄프 픽션에서 존 트라볼타와 춤추는 장면, 은색 드로리안 자동차가 시속 88마일로 달리는 백 투더 퓨쳐의 장면은 모두 융합되어 90년대 초반의 미국의 대중문화를 대표한다. 각각의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그 시대를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맥락에 대한 이해가 한참 뒤쳐질 수밖에 없다. 이미 수익을 충분히 끌어올리고 다양한 창구 효과의 이익을 톡톡히 맛보았으며 개봉한지 20년도 더 지난 영화를 아직도 못 본 사람이 있다면, 문화컨텐츠의 제기능을 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앞에서 열거한 세 영화 역시 아직까지도 합법적으로 온라인 구매가 불가능한 컨텐츠다.

3. 저작권이 아닌 존중의 원리

실효성도 없고 금전적 실리도 되지 않는 저작권 시스템에 기댈 수 없다면 창작자들은 노동자로서 살아나가기 위한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할 것이다. 우선, 컨텐츠 판매 자체로 고정 수익이 발생할 것이라는 생각 자체를 바꿔야 한다.[5] 한가지 난관은, 소개하는 대안 수익 모델들은 컨텐츠 소비 문화의 성숙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현재 저작권 모델은 창작자의 수익도, 사용자의 편리성도 보장해주지 못하는 반면, 대안적 모델들은 최소한 사용자의 컨텐츠 이용의 편리를 보장할 수 있다.

1) 대안 수익 창구

우선, 가장 전통적 방식의 후원 문화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Kickstarter는 후원을 끌어모아 프로젝트를 진행하거나 컨텐츠를 제작하는 대표적인 플랫폼이며, 현재 음반, 독립 영화, 게임등의 펀딩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컨텐츠 판매가 아닌 특별한 경험을 판매하는 것 역시 하나의 수익 창구가 될 수 있다. 미국의 음반 판매는 감소하는 반면, 라이브 콘서트 수익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데, 이는 경험을 중시하는 수요가 늘어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컨텐츠와 연계된 상품을 판매하는 것 역시 중요한 수익원이다. 각종 기념품(가수의 싸인 CD, 티셔츠 등)은 열정적인 팬이라면 가격이 비싸도 구매한다. 그리고 이것은 저작권으로 보호받지 못해 다른 누군가 베껴서 판매하더라도, ‘작가가 직접 공인한 싸인 CD’ 같은 것은 다른 누구도 판매할 수 없는 강력한 매력의 제품이 될 것이다.

2) ‘즐긴 만큼 지불해라’ 문화

안도할 수 있는 것은 ‘즐긴만큼 지불한다’는 문화가 조금씩 싹트고 있다는 것이다. ‘험블 번들’의 경우, 절대적으로 기부를 통해 컨텐츠에 대한 지불이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판매되는 모든 컨텐츠는 DRM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험블 번들’에서 발생하는 평균 수익은 매우 합리적이고, 이것은 자신이 즐기는 컨텐츠에 대해 합당한 금액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 의식있는 소비자가 있음을 보여준다. 다른 예로, 내가 구독하는 블로그는 페이지뷰(Pageview)로 결정되는 광고 수익 모델에 염증을 느끼고 몇 달 전 월정액을 지불하고 블로그 컨텐츠에 접근이 가능한 Paywall 모델로 변경했다. 재밌는 것은 Paywall 멤버십 회원과 비회원의 차이는 비회원은 블로그에 포스트가 게시되고 7일 이후부터 열람이 가능하다는 점 뿐이라는 것이다. 최근 이 블로그는 지난 몇 개월 간의 Paywall 실적을 발표했는데, 약 250명이 넘는 사람들이 기꺼이 매달 $4의 금액을 내고 구독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역시 가치있는 컨텐츠에 돈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 사용자가 있음을 보여준다.

3) Link to Source

인터넷 상의 텍스트 컨텐츠는 저작권이 가장 취약한 부분이다. 텍스트를 드래그해서 복사하는 것은 DRM이 걸린 음원을 우회해 복사하거나 해적 사이트에서 영화를 다운로드 받는 것보다 훨씬 쉽다. 앞서 소개한 블로그와 달리 대부분의 웹사이트들은 Paywall 모델이 아닌 페이지뷰 광고 수익 모델을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웹 사용자들이 자발적으로 행하고 있는 것이 Blockquote, 그리고 Linklog 형식[6]의 디지털 글쓰기다. Blockquote를 사용하여 해당 텍스트 구절이 다른 소스에서 따온 것임으로 표시하고 하이퍼텍스트 Link를 사용하함으로써 출처 사이트에 페이지뷰를 유도하는 것은 원저작자의 페이지뷰 수익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길 바라는 디지털 퍼블리셔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이다.

4. 권력에 의한 통제가 아닌 자정작용

저작권은 제기능을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저해하고 개인의 자유로운 창작 욕구를 막는 역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그런데 저작권이 약화되거나 없는 상태에서 저작권이 의도했던 제기능을 유도하려면, 많은 부분이 이용자들의 자율성에 매달려야 한다는 사실은 큰 논리의 약점이다. 조금은 무책임한 이야기같지만 사실 그게 궁극적인 해답이다. 노트북을 잠시 카페에 펼쳐두고 화장실에 다녀오더라도 그 사이 아무도 훔쳐가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성립하는 것처럼, 창작물에 대해 사용자들이 건전하게 이용하고 합당한 댓가를 지불하는 것이 상식적인 사회로 변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그리고 다행히도 인터넷이라는 매체는 이러한 정신을 전파하는데 좋은 매체다. 그 첫 걸음으로 뻔뻔스러운 표절자에 대한 응징을 정부 권력이나 소수 기업에서 공중에게로 끌어올 수 있다.
저작권이 없는 상황에서 누군가 뻔뻔스럽게 다른 사람의 창작물을 베낀다고해서 그 표절자가 아무런 죄값도 치루지 않는다면 부조리하게 느껴질 것이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저작권 침해에 대한 처벌을 정부 권력이나 기업이 아닌, 컨텐츠 사용자들의 손에 넘기는 것이다. 씨앤블루의 ‘외톨이야’ 사건은 법원의 판결이 어떠하든 많은 사람들에게 씨앤블루의 이미지를 재고하는 결과를 낳았다. 오히려 모호한 기준의 저작권보다 컨텐츠 소비자들이 서로 논의하고 비판하는 장이 형성되는 것이 뻔뻔스러운 표절행위를 응징하는 적합한 형벌이 가능하다. 비록 표절행위를 통해 몇몇 객체들이 단기적 이익을 성취하더라도 공론의 장을 통해 형성된 사용자들의 고발행위와 비난은 장기적으로 그들에게 멍에가 될 것이다. 인터넷의 발달은 사용자들이 공론의 장을 형성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었고, 이전보다 더 효율적으로 가치있는 창작자와 뻔뻔한 표절자를 가려내는 생태계가 될 것이다.


  1. 피해 금액이 ‘유포되지 않았으면 정당하게 벌어들였을 돈’이라고 계산하는 배급사들의 생각도 동의하기 힘들다.  ↩

  2. 하지만 많은 사용자들의 목적은 해적 행위라고 생각되어 진다.  ↩

  3. ‘건축학개론’이 금지어라면, ‘건.축.학.개.론.’, ‘건/축학’ 등으로 우회하여 검색할 수 있다.  ↩

  4. 아청법이 문제가 되는 이유 중 하나 역시 정부가 컨텐츠를 차단할 권리를 갖게 된다는 점이다.  ↩

  5. 한국의 많은 아이돌 스타들이 밟고 있는 ‘가수는 진출 발판일 뿐 연기나 광고계로 돈벌자’는 생각도 영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물론 노예 계약 같은 에이전시의 횡포와도 맞물려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

  6. 대표적인 예로 DF-Style Linked List가 있다. DF Style이란, 미국의 유명한 IT 블로거 John Gruber의 블로그 Daring Fireball가 최초로 사용하기 시작한 방식으로, 블로그 포스트 각각의 제목이 해당 포스트의 원문이나 출처가 되는 사이트로 직접 링크를 걸어두는 형식이다. 이 블로그에도 DF-Style이 적용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