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여분의 이어폰이 있다면

by Yun

당신에게 사용하지 않는 여분의 아이폰용 이어폰이 한 개 있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당신의 친한 친구 한 명은 이어폰이 필요하다. 친구는 당신에게 여분의 이어폰이 한 개 있다는 것을 모르는 상태지만, 그는 당신의 아끼는 친구이기 때문에 그를 위해 이어폰을 기꺼이 한 개 주기로 결심한다. 이럴 경우 당신은 당신이 사용하던 것을 줄 것인가, 아니면 새 이어폰을 줄 것인가? 당신이 만일 친구에게 쓰던 것을 주고 당신의 것을 새 것으로 바꾸면 친구는 그것을 눈치 챌 만큼 당신과 자주 만나며 시간을 많이 보내는 사이다.

여기에서 미묘하게 작용하는 심리는:
– 이어폰도 일종의 소모품이기 때문에 새 것을 주는 것이 아깝다.
– 어차피 돈 굳도록 주는 것도 친구로서는 고마워할 일이지만, 그래도 친구가 ’이어폰 따위 쓰던 것 말고 새 거 가져다 줄 수도 있지’라는 생각을 할까봐 두렵다.
– 친구는 당신같은 Nerd가 아니기에 이어폰 따위에 크게 집착하지 않는다.

’Hey Yun, 쪼잔하게 이런 것 같고 난리야. 주는 것만 해도 친구로서는 고마운 일 아냐? 그냥 주는대로 쓰라고 해. 거기다가 저 친구는 이어폰 따위에 집착 안한다니깐 입 다물고 고마워하라고 해’라고 이야기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보다 고민이 많이 되는 문제다. 친구에게 호의를 베푸는데도 불구하고 상대방에게 욕을 얻어먹어야 한다면, 애초에 베풀지 않는게 좋지 않을까?

비슷한 경우는,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손자 손녀에게 선물을 줄 때도 발생한다. 할머니는 지난 연휴 때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셨고, 20대 초중반의 손녀에게 돌하루방 핸드폰 악세사리를 기념품으로 사왔다. 그 20대 손녀딸은 절대 그 악세사리를 사용하는 일이 없을 것이고, 책상 서랍 세 번째 칸쯤에 처박혀 있을 것이다.

이번엔 당신이 40~50대 가정주부라고 가정하자. 당신은 취미로 비즈 공예를 한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당신의 작업에 열정을 갖고 있으며 만든 결과물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 당신에게는 20대 초중반의 조카가 있다. 다음 주에 있는 가족 모임에서 조카들을 위해서 당신이 만든 비즈 공예 중 하나를 선물하려고 하는데, 대체 어떠한 것을 주는게 좋을지 몰라서 세 개쯤 가져가서 마음에 드는 것을 하나 선택하라고 할 예정이다. 선택의 권한을 조카에게 주는 순간, 당신이 자랑스러워하는 작품들의 가치는 끝없이 하락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