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by Yun

최근 집에서 사소한 사건이 있었다. 집안에서 사용하는 정수기 필터 교체 비용이 꽤나 비싸다며 차라리 직접 생수를 사거나 배달을 시켜서 마시는 것이 어떠냐고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우리집은 알칼리 정수기를 사용하고 있었고, 이 정수기는 업체로부터 정기적으로 필터를 교체해주어야 한다. 내가 정수기를 쓰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자, 알칼리수를 마시면 몸에 더 좋다는 이야기, 수돗물을 그대로 마시기 두렵다는 이야기 등을 하셨다.

그로부터 약 한 삼십분 정도 정수기와 수돗물에 관한 글들을 검색해보았다. 나는 알칼리수가 몸에 좋다는 이유와 나쁘다는 이유 모두 찾았으며, 수돗물을 믿고 마실 수 있는 이유와 그렇지 못한 이유도 찾았다.



세상이 너무 다원화되어 어떠한 선택이 올바른 가치판단인지 결정하기 어려워졌다.

요 며칠 읽은 여러 이슈를 보면 한 편의 입장만을 대변하기 위해 쓰여진 글이 많다. 반대를 위한 반대일 수도, 맹목적 믿음에 기반한 힐난일 수도, 편협한 시각으로 인한 오해인 경우도 있다.

요사이 화제가 되는 우유의 유해성 이야기, 일본 방사능에 관한 이야기 등을 읽어 보면 양 쪽 모두 번듯해 보이는 증거를 들고 와서 자신의 주장을 꽤나 그럴싸하게 포장한다.

혹자를 여기서 물을 것이다. 조금만 뒤져보면 잘못된 증거나 논리적 비약으로 끼워맞추는 주장이 있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독자들은 논리적 비약을 찾기 위해 헤집거나, 근거라고 첨부된 링크를 따라가 출처를 확인하지 않는다. 아니, 보통은 글 전문을 읽지도 않을 것이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 누군가의 리트윗이나 좋아요를 통해 내 타임라인에 노출된 글의 제목이나 일부분만 보고 ’아, 일본 여행 가면 안되겠구나’라는 식으로 판단할 것이다.

논리가 부족한 정보를 재전파하는 사람을 덮어놓고 나무랄 수도 없다. 양 쪽의 주장이 팽팽하여 헷갈릴 정도로 검색 노이즈가 심한 이슈는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기 어렵다. 특히 해당 이슈가 특정 집단이나 기업에게 손익이 발생하는 경우 (거의 모든 이슈가 그렇다.) 적극적인 PR캠페인을 통해 공중으로 하여금 사실이 무엇인지 모르도록 연막탄을 펼치기 마련이다.

논란이 되는 이슈들은 대체로 독립변인만을 골라내어 상관관계를 밝혀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때문에 양 쪽 모두 애매모호한 부분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차용하기 쉽다. 특정 변인이 유의미한 영향을 끼친다고 과학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표본을 통해 장기간 관찰한 실험 결과나 최첨단 장비를 이용한 측정이 필요한 법이다. 이러한 실험을 개인이 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특정 이익집단이 집행할 경우에는 편향된 결과를 도출하기 쉽다. 비타민제 이슈와 같이 반박하기 힘들 정도로 강력한 공신력을 가진 집단이 공인한 사안의 경우는 비교적 쉽게 믿음의 근거로 의지할 수 있겠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슈가 이러한 방식으로 저명한 기관에 의해 확증되길 기대할 수는 없다. 결국 개인이 선택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몇 분 키보드를 두드리며 검색해보고 해당 이슈에 대한 개략적인 동향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동향 파악에 사용되는 체(filter)는 개인의 비판적 정보습득 정도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결국 다원화된 현대에 어떠한 이슈에 있어서 완벽하게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세상의 모든 이치를 아는 신적 존재가 아닌 이상,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한 신용은 외부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결국 물에 관한 이슈는 현상태를 유지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우리 집은 정수기를 사용하지만, 정수된 물을 다시 보리차로 달여 먹는다. 나는 어차피 끓여서 먹는 것이기 때문에 굳이 정수기를 사용하면서 필터 교체 비용을 지출할 이유가 없다고 했지만, 어머니 입장에서는 뭔가 돈을 써야 좀 더 좋은 물을 마신다는 기분을 버릴 수 없는 것 같다. 하긴 플라시보 효과가 가장 효과적인 약이라는 이야기를 생각할 때 돈을 주고서 몸에 좋은 물을 먹는다는 자기 암시가 강하면, 1) 실제로 몸에 안좋게 반응하더라도 플라시보를 통해 상쇄될 것이고, 2) 좋은 물을 마신다는 정신적 행복감까지 성취할 수 있으니 아주 나쁜 결론은 아니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