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gital-Only의 문제점

by Yun

우리 집은 디지털 도어락을 사용한다. 어제저녁, 디지털 도어락이 원인을 알 수 없는 고장을 일으켰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열심히 이것저것 만져보다가 문이 열린 채로 닫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즉 문이 열린 상태에서 데드볼트(Dead Bolt)가 움직이지 않게 된 것이다.

우리 집에서 사용하는 디지털 도어락은 삼성의 SHS–6601이다. 마치 요새 유행하는 미니멀리즘 디자인을 먹은 듯한 심플한 디자인이다.

무작정 불편한 점을 까기에는 이 제품이 꽤 좋은 점도 있어서 장점도 이야기하겠다.
기존 대부분의 도어락처럼 내부에서 문을 열 때 자동개폐 버튼을 눌러야 할 필요가 없다는 점, 레버형이 아니라서 손으로 손잡이를 돌릴 필요가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양손에 짐을 들고 있는 상황에서 현관문을 열 때를 상상해보면 된다. 손가락으로 버튼을 누른 후 손으로 손잡이를 잡아서 돌려서 미는 것이 아니라 그냥 툭 하고 바(bar)를 밀어버리면 열리는 방식이라서 팔이나 팔 뒤꿈치로 밀어서 열 수 있다. 제품의 홈페이지 소개에서 묘사된 것처럼 기존 도어락이 2 스텝인 것보다 1 스텝으로 열 수 있다는 것은 확실히 편하다.

이 제품의 첫 번째 단점은 조작법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조작법을 알았으면 애초에 문을 닫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지도 않았겠지. 문제가 생겼을 때 무엇을 눌러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조작부에 버튼 한 개와 토글스위치 하나가 있는데 토글스위치에 A|M이라고 쓰여있을 뿐 기능이 무엇인지 추측하기 어렵다. 제품 설명서를 찾아보면 단서가 있겠지만, 어디다 처박아뒀는지, 버리지는 않았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1] 심지어 홈페이지에 제품 설명서 파일도 없고 전화로 문의하라는 글귀만 적혀있다.

결정적으로 이 제품이 문제가 있다고 느낀 부분은 수동 개폐장치가 없다는 점이다. 기존의 2 스텝 도어락의 경우 자동개폐 버튼을 누르면 돌아가는 동그란 레버(즉, 수동 개폐장치)가 있다. 건전지가 모자라거나[2] 데드볼트가 사용자의 의도에 반해 멋대로 움직였을 때[3] 이 레버를 직접 손으로 돌려 데드볼트를 수동으로 조작할 수 있다. 문이 열린 상태에서 발기된 데드볼트를 손으로 조작할 수 없으니 난감한 것이다.

다행히도 어찌어찌하여 십여 분을 씨름한 끝에 다시 데드볼트를 집어넣고 문을 정상으로 되돌려 놓았지만(적어도 그렇게 보이지만), 문제의 원인도 해결한 방법도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이 사건을 겪으면서 떠오른 생각은 디지털 시스템이 실패할 경우 수동으로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디지털 시스템은 전문가가 아닌 입장에서는 복잡도가 너무 높아서 사용자가 고치기가 어렵거나 많은 시간을 요구한다. 긴급 시에 임시방편으로 해결 가능한 수동 제어 방법이 필요하다. 에반게리온의 네르프도 중앙 제어 컴퓨터인 마기가 이상을 일으켰을 때 수동으로 에바들을 출격시킬 수 있었고, 매트릭스에서도 마이클이 APU를 조종해 도크를 수동으로 조작해(부수고) 나이오베가 운전하는 해머 호를 시온으로 들어오게 할 수 있었다.

의문점은 과연 어느 정도 수준에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대비책이라는 것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예외적 경우를 고려하는 것이기 때문에 퍼포먼스가 비효율적일 수 있다. 어디까지나 대비책이기 때문에 이상 시에 임시로 작동할 수 있는 수준이면 충분하지, 정상 기능을 방해하거나 지나치게 비대해져서는 안 된다. 또한, 실패에 따른 결과가 얼마나 치명적이냐에 따라서도 대비책의 정도가 달라질 것이다.

스마트폰의 터치스크린이 망가졌을 경우 재수가 없고 물건을 소홀히 다룬 스스로를 탓해야지 터치가 안될 경우를 대비해 물리 키보드가 달려있어야 한다고 비난할 수는 없는 것이다.
반면 항공기의 경우 기능이 이상을 일으킬 경우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갈 정도로 치명적이기 때문에 설계 단계부터 수동으로 조작이 가능하고, 비효율적이더라도 충분한 여분의 연료를 싣고 운항해야 할 것이다.
자동차의 자물쇠는 요새는 열쇠를 지닌 채로 가까이 다가가면 자동으로 열려서 직접 열쇠를 구멍에 넣고 돌릴 필요가 없지만, 센서가 망가졌을 경우를 대비해서 열쇠 구멍이 그대로 남아있다.

디지털 도어락 역시 자동차의 자물쇠와 비슷한 맥락이다. 평상시에는 디지털로 여닫지만, 이게 이상을 일으켰을 경우에는 당장 집의 안전이 위험해지는 것이다. Less is more라지만, 이 제품은 빼면 안 될 것까지 빼버린 것 같다.


  1. 다들 그러지 않나?  ↩
  2. 보통 디지털 도어락은 건전지가 모자라면 경보음으로 알려주는데 그 많은 경보음도 무시한 채로 방전될 때까지 방치한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
  3. 즉 우리 집 도어락이 처한 상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