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습득을 통한 패러다임 형성

by Yun

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접하고 사실을 판단하는 나의 기준은 다음과 같다.

  1. 내가 생각했을 때 공신력이 있다고 판단하는 매체를 통해서 보도되는 사실만을 사실로 간주한다. 단, 어떠한 카테고리의 정보냐에 따라 같은 매체도 다른 공신력을 가질 수 있다.
    내 기준의 공신력 높은 매체를 모두 나열하기는 어렵겠지만 생각나는 대로 적어본다면:
    국내 매체의 경우 조선, 중아, 동아, 경향, 한겨레, 공중파 3사의 TV 뉴스, YTN, 매일경제신문(MBN), 연합뉴스 등이고,
    외신의 경우 NYT, WSJ, Washington Post, AP 정도를 꼽을 수 있겠다.[1]
  2. 위에 열거한 매체들 사이에서 사실 보도에 있어 불협화음이 일어날 경우, 각 기사 내용을 토대로 더 전문적/심층적으로 보도된 것을 사실로 간주한다.
  3. 위에 열거한 매체가 아니더라도 신뢰할 수준의 탐사 보도를 행한 경우 사실로 간주한다.
  4. 공신력이 떨어지는 매체의 정보일 경우 크로스 체킹을 시도한다.신용도 높은 다른 매체에서 같은 사실을 보도하였는지 확인한다. 외신 기사를 가져온 경우는 해당 외신 기사 원문을 직접 읽어보며 오역이나 원문과 맥락이 다르게 번역된 부분은 없는지 확인한다. 원문 외신 매체의 공신력이 낮을 경우 믿지 않는다.
  5. 기사를 읽을 때는 사실 보도와 의견 보도, 인용 보도를 구분하기 위해 노력하고 사실 보도만을 받아들인다. 1번에서 4번까지 사용되는 ’사실’이라는 단어는 기자의 의견은 배제되는 것이다.[2]
  6. 개인 블로그 글, 돌아다니는 캡처 이미지, 트위터에 링크 없이 떠도는 소문은 수천 번 리트윗되었어도 모두 거짓이라고 가정한다.
  7. 장기간 구독을 통해 글쓴이의 신용도를 가늠할 수 있거나 해당 분야에 있어 믿을 만한 정보원이라고 명성(reputation)을 형성한 개인 블로그의 경우 어느 정도 신뢰를 준다.
  8. 모든 뉴스는 (나아가 모든 정보는) 특정 맥락을 부각하게게끔 프레이밍되었을 여지를 항상 남겨둔다.
  9. 선별효과이론이 나에게 작용하고 있다는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10. 내가 직접 경험한 것은 사실이다.
  11. 이러한 필터링을 통해 얻은 정보를 정상 패러다임으로 간주한다.
  12. 정상 패러다임을 뒤집기 위한 노력은 환영하지만, 이마저도 공신력 높은 매체가 조명하지 않는 이상 크게 신뢰하지 않는다.

패러다임:

패러다임(영어: paradigm)은 어떤 한 시대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를 근본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테두리로서의 인식의 체계, 또는 사물에 대한 이론적인 틀이나 체계를 의미하는 개념이다.

패러다임은 언제나 옳은 것이 아니다. 애초에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경우도 있다.[3]
패러다임이 중요한 이유는 주어진 사실을 진실이라고 가정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생산적인 논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베이스가 잘못된 것 같다고 계속 같은 자리에서 논쟁하면 어떠한 방향으로도 나아갈 수 없다. 음의 방향이든 양의 방향이든 움직여야 패러다임이 옳거나 틀렸다는 것을 밝혀낼 수 있다. 인간 사회가 언제나 최고의 효율로서 작동하는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한 패러다임을 믿고 음의 방향으로 진행했다가 이것이 틀렸다는 것이 입증되면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나면서 발전하는 것이다.

한 패러다임이 지배적일 때 그것이 틀렸다는 반론은 음모론이다. 천동설이 정상 패러다임이었던 당시에 코페르니쿠스는 음모론자였다. 음모론이 진실로 밝혀져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기존 패러다임을 신용했던 사람을 비난할 수는 없다. 해당 이슈로 밥 벌어먹는 사람이 아닌 이상 특정 이슈에 대해서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사실 여부를 확인할 의무도, 그럴 여력이나 능력도 없다. 대체로 사람들은 자신 주변에 ’전반적으로 흐르는 정보’를 토대로 패러다임을 형성한다. 정상 패러다임을 받아들이는 것은 개인에게 지극히 당연하고 효율적인 방법이다.

나는 정상 패러다임만을 믿고 음모론자들의 입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아무리 허무맹랑한 헛소리일지라도 발언의 기회를 제한하는 것에 가장 큰 반감을 느낀다.[4][5] 정상 패러다임을 끌어내리려는 지속적인 시도가 있어야 1) 현재 패러다임이 양의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확신을 얻거나, 2) 패러다임 전환을 통한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이야기하는 것은 사람들이 정상 패러다임을 큰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현상은 지극히 정상적이기 때문에, 패러다임을 뒤집는 의견을 펼치려는 사람들은 그들이 생각하는 의구심을 다른 사람도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정상 패러다임을 뒤집으려는 주장 중 Ad Hoc 논증 방식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은데, 가정의 가정을 더해서 의혹만 제기하는 방식은 정상 패러다임 지지자의 신뢰를 무너뜨리기 힘들다.

정상 패러다임을 옹호하는 전문가 혹은 해당 이슈와 밀접하게 관련 있는 집단은 음모론이 등장할 경우 그것이 틀렸음을 드러내야 그들의 패러다임을 지킬 수 있다.


  1. 공신력 있는 매체가 어떤 것인지 판단하는 것은 개인마다 다를 수 있다. 그리고 최근 사건과 관련하여 대한민국 모든 언론 매체의 신용도가 땅에 떨어진 것도 사실이다.  ↩

  2. 아쉬운 점은 국내 언론들이 쏟아내는 기사에서 인용 보도와 의견 보도를 벗겨내는 작업을 하고 나면 남아있는 사실 보도가 거의 없다. 이는 국내 언론 대부분이 확정적인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삼가고 (해당 사안에 대해 특정 방향으로 편향된 의견을 가졌을 수도 있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인용함으로써 직접적인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만큼 국내 매체들의 보도력이 약하다는 증거일 수도 있겠다.  ↩

  3. 불과 백여 년 전만 해도 노예 제도는 세계적으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패러다임의 변화로 현대에 노예제도를 찬성하는 사람은 몰상식한 미개인 취급을 받는다.  ↩

  4. 여기서 말하는 ’발언의 기회 제한’은 정부에 의한 제한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누군가 개소리를 하는 것은 자유지만, 그 개소리를 듣고 입 닥치라고 (정부가 아닌)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도 자유다. xkcd 카툰을 참조하길.  ↩

  5. 음모론의 횡행은 오히려 정상 패러다임을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