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그녀

by Yun

몇 주 전에 쓴 글 오디오 시대의 도래, GUI의 몰락과 관련하여 재밌는 와이어드(Wired) 기사를 읽었다. 영화 Her의 프로덕션 디자이너 케이케이 바렛(KK Barrett)이 미래 인터페이스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스크린으로부터 해방된 미래를 상상할 때 음성인식 시스템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바렛은 “영화 Her에 등장하는 컴퓨터는 오늘날 존재하는 컴퓨터처럼 사람들에게 자리에 앉아서 스크린에 집중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이 현상을 음악과 영화로 비유한다. 음악은 어디서든지 들을 수 있고 청취자가 무언가를 바라볼 필요가 없다. 즉, 상호보완적(complementary)이다. 반면 영화를 볼 때에는 시청자가 한 장소에 머물러 있어야 하며 한 방향만을 바라봐야 한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주인공 테오(Theo)는 이어폰만 끼고 있으면 무엇을 하는 도중이든 상관없이 OS로부터 정보를 받을 수 있다. […]

요새 사람들이 식사 테이블에서 무얼 하는지 상상해봐라. 모두 자신의 스마트폰을 확인한다. 다들 그게 무례한 짓이라는 것을 안다. 요새 등장하는 스마트워치의 가장 큰 약속이 바로 이 부분이다: 사람들에게 스마트폰을 열지 않아도 되는 자유 재량권을 주는 것.

스마트워치는 스마트폰보다 작고 은밀할지 몰라도 여전히 우리가 쳐다보아야 할 스크린을 갖고 있다. 바렛은 “작은 이어폰 하나만 꽂으면 당신이 필요한 정보를 모두 얻을 수 있다고 상상해봐라.”라고 질문을 던진다. 여전히 어느 정도 사용자의 주의가 분산되겠지만, 스크린을 볼 때처럼 눈꼴 사나울 정도는 아닐 것이다.

바렛은 음성인식 인터페이스가 사용자를 스크린으로부터 해방시킬 뿐만 아니라 접근성을 더 높인다고 이야기한다.

완벽히 작동하는 음성인식 인터페이스는 다른 혜택을 가져다준다. 대화형 인터페이스는 모든 것을 사용하기 쉽게 만들 것이다. 자연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OS를 탑재한 기기들은 모든 메뉴, 도구, 기능들이 단지 요청하는 것만으로 실행이 가능할 것이다.

이와 비슷한 맥락의 현상은 지금도 발생하고 있다. iOS나 ChromeOS와 같은 최신 모바일 운영체제는 복잡한 파일 시스템 하이라키를 눈에 보이지 않게 숨겨버렸다. 영화 Her에서 등장하는 기기들의 인터페이스는 오늘날의 운영체제들보다도 더 간단한 구조로 묘사된다. 바렛은 “영화의 주인공 테오가 기기를 사용하느라 호들갑 떨며 만지작거리지 않기를 바랐다.”고 이야기한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테오는 아이패드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It just works.”인 세상에 사는 것이다.

iOS에서 달력의 시작 날짜를 일요일이 아닌 월요일부터 보이도록 변경하는 방법을 알고 있나?[1] 아마 설정에서 이것저것 들락날락 거린 후에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자연언어를 이해하는 기기라면 “달력에서 시작 날짜를 월요일로 바꿔줘.”라고 말만 하면 끝이다.

좀 더 복잡한 예를 들어보자. 다른 팀원이 구글 드라이브에 올린 PPT 파일을 PDF로 변환해서 교수님께 메일로 제출해야 하는 상황이다. 컴퓨터에서 이 작업을 하려면 수 분이 걸릴 것이다. 자연언어 인터페이스를 사용한다면? “내 구글 드라이브 ‘커뮤니케이션 이론’ 폴더에 김지혜가 어제저녁 올린 PPT 파일 PDF로 변환해서 박주연 교수님 메일에 첨부해. 메일 내용은 … ” 이런 형식이 될 것이다.
자연언어와 맥락까지 이해하는 AI와 같은 인터페이스를 사용한다면? 훨씬 더 간단하다. “컴이론 과제 어제 팀원한테 받은 거 PDF로 변환해서 교수님께 보내. 내용은 이전에 과제 제출했을 때처럼 정중하게 내용만 맞게 바꿔서.” 끝.

마지막으로 가장 흥미로운 부분, 바렛이 이야기하는 AI 운영체제의 가장 큰 장점은 사람의 생산성을 진정으로 높여준다는 것이다.

AI의 가장 큰 장점은 고정된 하나의 성격을 갖지 않는다는 점이다. 킬러 앱으로서의 AI의 특징은 사용자가 특정 상황에 필요한 것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다.

감정 소모가 큰 이혼의 과정에서 허전함을 느끼는 영화 속 주인공 테오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샘[테오의 인공지능 운영체제 이름]은 이런 테오를 위해 소개팅을 주선한다. 테오의 친구인 에이미가 남편과 갈라섰을 때 에이미의 OS는 테라피스트의 역할을 한다.

위 인용구에 이어 기사에서는 이미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기술들, iOS의 방해금지 모드(Do Not Disturb)나 Google Now의 개인화된 서비스를 예를 들며 맥락을 파악하는 OS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더 흥미로운 부분은 OS가 사람의 감정상태를 이해하고 생산적인 상태로 되돌아가도록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이다. 기술의 목적 중 하나가 인간의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라면, 슬럼프에 빠진 당신을 정상궤도로 돌려놓아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OS는 가장 진보된 형태의 기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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