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달과 인간 사회의 종말

by Yun

최근에 페르미 역설을 소개하며 외계 생명체 존재 여부와 우리가 그들과 접촉하지 못하는 이유를 비교적 쉽게 설명한 재밌는 글을 읽었다.

여기서 나오는 흥미로운 가정 중 하나가 ‘거대한 제거장치’(The Great Filter)[1]라는 것이다. 이 가정에 따르면 모든 생명체는 그 생명체가 Pre-life의 원시적인 형태에서부터 하나의 은하계를 지배할 정도의 고등 수준으로 발전하는 과정 중에 이 제거장치라는 필터를 만나게 된다. 이 제거장치는 대부분의 생명체 혹은 문명이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거대한 장벽과 같은 역할을 한다. 페르미 역설에서 설명하는 우리가 외계 생명체를 만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가 지금까지 이 제거장치의 관문을 통과한 존재가 없다는 것이다.

거대 제거장치가 무엇인지는 규정되지 않았다. 그저 ’지적 생명체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발전하지 못하도록 막는 어떠한 관문이 존재하지 않을까?’라는 가정에서 생겨난 개념일 뿐,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생명체의 발현 그 자체일 수도, 원핵생물에서 진핵생물로 진화하는 단계일 수도[2] 있다.

제거장치는 우리 인류 문명도 아직 경험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지구 위의 모든 생명을 한 번에 싹쓸이할 위력을 가진 감마선폭발이나 거대 운석의 충돌이 될 수도 있다.

다른 제거장치로서 상상할 수 있는 것은 문명 스스로 자멸하는 것이다.

[거대 제거장치의] 또 다른 후보는 모든 지적 문명이 기술 발전의 일정 수준에 이르면 스스로를 파괴하는 단계를 겪는다는 것이다.
Another candidate is the possible inevitability that nearly all intelligent civilizations end up destroying themselves once a certain level of technology is reached.

오늘 문득 트위터 피드를 보다가 이러한 자기파괴의 과정이 꼭 환경 오염이나 핵전쟁과 같은 요인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트위터 피드를 보고 있으면 수많은 대립을 목격하게 된다. 가치관 차이에 의한 싸움에서부터 타인의 무지를 조롱하는 힐난까지 다양한 이유로 사람들이 반목하고 있다. Web 2.0은 누구나 마이크를 잡을 기회를 주었고, 덕분에 타인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예전보다 더 쉽게 알 수 있게 되었다.

인터넷 이전의 시대는 다른 사람이 어떠한 태도를 보이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피상적으로만 짐작이 가능했다. 여론조사나 투표 결과 따위로 대략적인 컨센서스를 파악하고 나와 비슷한 소득 수준, 거주 지역, 학력 수준의 사람들은 비슷한 태도를 갖고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만 할 수 있었다. 논쟁의 여지가 있거나 정치적 성향을 밝히는 이야기는 막역한 사이거나 코가 삐뚤어지게 술을 마셔야만 나오는 것이었다. 결정적으로, 오프라인[3] 이외의 어떠한 방법으로 다른 누군가를 만나거나 그 사람의 생각을 듣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며 상상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도 다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온라인 공간을 통해서 별로 친하지 않은 교수님들, 직장 선후배, 작년 여름에 어쩌다 술 한번 같이 마신 학교 동생이 동성혼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술 한 방울 마시지 않고 얼굴도 맞대지 않은 상태에서 자발적으로 자기 생각을 들려주고 있다.

나아가서는 얼굴을 보지 않은 사람의 존재를 의식하고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온라인 공간에서 뚜렷한 활동으로 어느 정도의 명성(reputation)을 형성하고 있는 하나의 존재가 의식되기 시작하면, 그 사람은 구체화된 한 명의 객체가 된다. 뚜렷한 하나의 객체가 나와 다른 의견을 갖는다는 것은 공격할 표적이 생긴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 객체는 공격하는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반격할 것이다.

인류 역사상 지금처럼 한 개인이 방대하게 많은 타인의 생각을 관찰하고 그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적은 없었고, 이 때문에 분쟁이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아직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는 인구가 43억 명이고[4], 뉴로 사이언스의 발달은 예의라는 것을 집어던진 날 것의 생각들을 관측하게 해 줄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달이 인류 문명이 자멸하게 만든다는 이야기는 어찌 보면 지극히 기술결정론적이고 식상한 이야기이긴 하다. 하지만 내 트위터 피드를 통해 아주 사소한 문제로 쌈박질에 뛰어드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이러한 상상들이 실재로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뭐, 서로 간의 다름과 결핍으로 인한 반목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LCL의 바다로 돌아가는 서드 임팩트를 갈망하는 날이 올지도.


  1. ‘거대한 제거장치’ 혹은 ’제거장치’라는 번역은 경북대학교 황재찬 교수의 ‘과학을 묻다’라는 글의 번역을 따랐다.  ↩

  2. 지구 생명체가 원핵 생물에서 진핵 생물로 진화하기까지 20억년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을 감안하면 일리가 있다.  ↩

  3. 인터넷 이전의 시대에는 오프라인 인간관계라는 개념조차 없었을 것이다.  ↩

  4. Global Internet usage on Wikipedi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