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 풀의 필요성

by Yun

자신을 스스로 얼리 어답터라고 표현하기는 낯간지럽지만, 나는 새로운 서비스나 제품이 있으면 남들보다 먼저 사용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주머니 사정상 비싼 디지털 기기를 출시할 때마다 사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주로 앱이나 온라인 서비스에 한정되기 마련이다.

앱닷넷(App.net)이나 시크릿(Secret)과 같은 서비스도 처음 소개됐을 때 일단 클릭해서 가입신청부터 했었고, 최근의 예로는 무제한 사진 업로드 서비스 셔터(Shutter)나 (아직 정식 출시되지 않은) 이모지 기반 네트워크 이모즐리(Emoj.li)등이 있다.

이러한 서비스를 소개받는 경로는 유일하게 구독하는 IT 저널인 더 버지(The Verge)의 가장 비중이 크고, 그 이외에도 래핑 스퀴드(Laughing Squid)나 다른 영미권 블로거들의 소개가 주요한 역할을 한다.

소개받은 서비스가 리포터 앱처럼 혼자 사용할 수 있는 개인용 앱이나 게임인 경우도 있지만, 위에서 언급한 앱닷넷, 시크릿, 기타 위치 기반의 크라우드 소스 기반의 플랫폼이나 새로운 SNS 네트워크일 경우에는 혼자 사용하기가 난감하다. 이러한 서비스는 혼자 사용해서는 그 서비스의 진수를 경험할 수 없다. 저널리즘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이러한 새로운 네트워킹 플랫폼을 직접 경험해보고 각 서비스의 특징적인 UI나 컨텍스트가 개인의 사용 행태에 끼치는 영향을 관찰하고 싶은 욕구가 강한데, 같이 사용해 볼 사람이 없다는 점이 걸림돌이 된다.

트위터가 국내에 성공적으로 상륙할 수 있었던 이유는 테크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한국어 사용자를 찾아다니며 팔로우쉽을 구축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트위터가 그 당시에 이미 해외에서 한창 유명세를 타고 있었던 덕분이지, 이제 막 서비스를 시작해 인지도가 낮은 외산 서비스는 이러한 원동력을 기대하기 힘들다. 이미 한국에서는 실패한 것으로 보이는 시크릿 역시 국내 사용자 베이스가 적고 늘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묻혀버린 요인이다.

Chasm

매일같이 새로운 네트워킹 서비스가 등장하는 요새, 캐즘(Chasm)을 넘어서는 서비스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극히 일부의 수용자에게 도달한 상태에서 성장을 멈추거나, 수익성/지속가능성 등의 문제로 사라져버리고 만다. 패스(Path)가 이러한 성격의 매체, 캐즘을 넘어서진 못했지만 꾸준한 사용자층을 유지하고 있는 서비스라고 생각한다.[1]

나는 캐즘을 넘어서지 못하더라도 차별적인 특징을 가진 서비스를 사용해보고 싶은 욕구가 있다. 요~(Yo)[2]처럼 SNS라고 부를 수 있는지 모호할 정도로 단순한 네트워킹 서비스도 직접 사용해보아야 왜 이것이 언론에서 주목받는지, 정말 단순한 반짝 유행으로 끝나버릴 조잡한 앱인지 생각해 볼 수 있다.

한때 생각했던 것은 나와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 해외에서 주목받지만 국내에 사용자가 거의 없는 서비스를 써보고 싶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테스트 풀(Test Pool) 그룹을 만들어 서로를 등록해서 여러 서비스를 사용해 볼 기회를 가지면 좋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테스트 풀을 구축하는 것은 아무래도 웹에서 인지도가 높은 사람이 주도해야 참여도가 높다. 앱닷넷의 경우도 존 그루버(John Gruber)벤 브룩스(Ben Brooks)와 같은 유명 블로거들이 에반젤리스트의 역할을 했기 때문에 유명세를 탈 수 있었다.[3]

이 방법이 어려운 점은 국내에서 그루버와 같은 폭넓은 구독자를 보유하고 막강한 입김을 가진 블로거나 저널이 부재한다는 것이다. 김광현 기자님이나 임정욱 센터장님이 그나마 국내 IT 업계에서는 영향력이 크다고 생각하는데, 이분들이 위에서 언급한 소소한 신규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장려할 여력이 있는지, 테스트 풀이라는 지극히 nerdy한 아이디어에 동참해줄 사람을 충분히 끌어모을 수 있는지 의문이다.

또 다른 문제로는 개인정보가 있다. 비록 요새 출시되는 많은 서비스가 이메일 기반의 가입이기 때문에 전화번호를 요구할 필요까진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특정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의 아이디나 이름(혹은 닉네임), 이메일 주소가 공개적으로 접근 가능한 것은 위험해 보인다. 시크릿처럼 익명 네트워크를 사용할 경우 이러한 문제는 아주 민감해진다.

마지막으로 친목질은 모든 것을 망치는 원인이 된다. 내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테스트 풀은 일체의 오프라인 모임을 갖지 않는 철저한 온라인 중심 그룹인데, 이것을 그룹 내규 비슷하게 만들어 강제하는 것이 우스울뿐더러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친목질로 인해 신규 멤버를 소외시키는 배타적 집단으로 변모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구상만 하고 안 될 것이라는 졸렬한 마음에 나는 기대를 접어버렸지만, 혹시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 이렇게 블로그를 통해 적어둔다. 테스트 풀에 관심이 있거나 내가 모르는 비슷한 성격을 가진 그룹이 있으면 알려주길 바란다.


  1. 6월 중순에 올라온 기사에 따르면 패스가 4백만 명의 액티브 유저가 있다고 하는데, 절대적인 숫자는 많아 보일지 몰라도 억 단위 사용자를 가진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의 규모나 인지도를 생각하면 캐즘을 넘어서서 대중화된 SNS라고 말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

  2. 물결표는 느낌을 살리기 위해 내가 임의로 넣었다.  ↩

  3. 안타깝게도 요새는 지속가능성이 의심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