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알기

by Yun

  1. 나는 맨날 Hallucinate라는 단어[1]의 철자를 Halicinate로 잘못 기억하곤 하는데, 구글에 Halicinate라고 검색하면 알아서 Hallucinate라고 정정된 결과를 보여준다.
  2. 오늘 낮에 “추차차~ 추추차~”하는 대사의 음악이 듣고 싶은데, 제목이 기억나지 않았다. 구글에 “추차차 추추차”라고 검색했고, 구글은 “추추차 추추차”가 원했던 검색이 아니냐고 되묻고, 1번 검색 결과로 Pitbull – Tchu Tchu Tcha를 보여줬다.[2]
  3. 내가 좋아하는 영상 중에, Siri를 해킹해서 랩을 시키는 영상이 있다. 핀보드에 저장해두긴 했지만, 난 항상 그냥 구글에 “Siri hack rap”이라고 검색해서 찾는다.

인터넷의 큰 장점 중 하나는, 찾고자 하는 정보 일부만을 기억해도 나머지 부분을 전부 찾아준다는 점이다. 인터넷이 어디에나 있는 지금, 대충의 특징이나 일부 묘사만 기억하면 사실상 그 정보는 이미 ’내 것’인 셈이다.

이러한 현실에서는 얇고 넓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디테일은 몰라도, ’세상에 이러한 것들이 있다’는 지도를 최대한 넓혀야 한다.

나이를 먹어 머리가 좀 크고 <매트릭스>를 다시 보았을 때, 진짜 세계와 가짜 세계를 구분한 것이 동굴에 비친 그림자에 빗댄 철학과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거기서 충분했다. 검색하니 바로 나온다. 플라톤의 이데아.
영화 <매트릭스>를 보는 것과 플라톤을 아는 것 각각은 중요하지 않다. 사실 둘 다 머릿속에 완벽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해도 그 연결고리를 끌어내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아는 것’은 레퍼런스일 뿐이다. 각각의 정보를 자세하게 알 필요는 없다. 대충 뭉뚱그려서 ‘이러이러한 것이 있어’ 정도만 기억하면 된다. 요새 일을 하며 느끼는 것도 비슷하다. 경험이 많고, 어디서 주워들은 것이 많아야 주어진 상황을 바탕에 맞게 머리속 레퍼런스를 뒤져 제안을 한다.

쓰다 보니 다다른 식상한 결론:
이미 지금도 ’아는 것’은 기계가 다 해내고 있다. 영화 <매트릭스>의 모든 프레임, 플라톤의 철학과 그에 대한 후대의 해석 모두를 인터넷이 담고 있다. 기계가 (아직) 못하는 것은 둘을 보고 연관성을 끌어 내는 것이다.[3]

따라서, 무조건 정보를 많이 소비해야 한다. 다만 각 정보에 대해서 세세한 것까지 알 필요는 없다. 물론 알면 좋기야 하겠지. 아이폰을 열고 ’동굴 그림자 철학’이라고 띡띡띡 검색하고 몇 초 기다렸다가 “아, 플라톤이네!”라고 말하는 것보다, 센스있는 타이밍으로 장면이 지나가자마자 “저 스토리는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완벽하게 차용했군.”이라고 말하는 게 멋있긴 할 테니.
하여튼 이제는 ’아는 만큼 보인다’까진 아니고, ‘대충 기억하기라도 하면 볼 수 있다’ 정도가 될 것 같다.

물론 많이 보고 레퍼런스를 축적한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수준으로 적시에 그것들을 끄집어내고 교집합을 뽑아내는 것은 아니다. 개인마다 차이가 존재할 것이다.

’적당히만 알아서 충분하다’가 적용하지 않는 상황이 몇 있다. 몇몇 시험에서는 정보를 완벽하게 암기했는지 여부를 평가한다. 위 1번에서와 같이 철자를 제대로 모른다면 영어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없다.


  1. “환각을 느끼다”라는 뜻이다. (네이버 사전)  ↩

  2. 심지어 이 글을 쓰기 위해 가수 이름을 검색하려고 했는데, 내 부정확한 기억력 덕분에 Pitfall tchu tchu tcha 라고 검색했다. 구글은 알아서 Pitbull Tchu Tchu Tcha라고, 그리고 그 곡의 풀 네임은 “Tchu Tchu Tcha Ft. Enrique Iglesias”라고 피쳐링 정보까지 포함된 거라고 알려줬다.  ↩

  3. 인공지능에 대해 모르지만… 각 정보의 항목에 Taxonomy를 상세하게 입력하면 기계가 여러 데이터의 공통점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Taxonomy를 입력해주는 것은 인간의 몫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