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이제잉 (VJing)

by Yun

브이제잉이 멋지다고 알게 된 것은 Deaumau5랑 Daft Punk의 공연 영상 때문이다.

브이제잉이 생소하다면 아래 두 영상을 보시라:
1. Deadmau5의 Cube
2. Daft Punk의 피라미드

01.
중학생 때 (중2병에 빠져) 국내 인디 락/메탈 공연에 가보긴 했지만, 무대 장치에 큰돈을 들여 비주얼에 신경을 쓴 공연장은 가본 적이 없다. 위와 같은 영상들을 보고 브이제잉이란 단어도 처음 알게 되었다. 사실 단어만 몰랐을 뿐, 예전부터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머릿속으로 선율과 비트에 맞춘 시각적 환상을 상상한 적은 많다. 누구나 그러지 않나?

혼자 상상하다 보면 장벽에 부딪힌다. 나는 모든 선율과 리듬을 따라가며, 모든 변화가 시각적으로 표현되는 상상을 한다. 상상하는 대부분의 표현은 점이나 선, 추상적 도형들로 이루어진 이미지다. 끝없는 그리드가 펼쳐지고, 거기 위에서 도형들이 등장하고 움직이는 기하학적 그림이다.

내가 상상하는 이미지는 무채색은 아니지만, 이런 영상의 느낌:
Dynamics of the Subway / Haisuinonasa
비록 대체로 매핑이지만, Dev Harlan이라는 디자이너의 작업이 내 상상과 들어맞는다:
Dev Harlan – “Parmenides I”
참, Simian Mobile Disco도 엄청 좋다:
10000 Horses Can’t Be Wrong

그런데 음악을 따라가며 이미지 그려내고 있으면, 어느 순간부터 뭔가 굉장히 조악해지거나 일관성이 떨어진다. 사운드의 모든 정보량을 마치 수학처럼 1:1 대응으로 표현하려고 하니 문제가 생기는 것 같다.
당연히 브이제잉이 내가 상상하는 것처럼 단순한 프로세스일 리가 없다.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1:1 대응식 비주얼라이징도 아닐 것이고, 추상적 도형만을 사용하지도 않을 것이다. 가수나 DJ의 성격도 드러내고, 음악의 컨텍스트도 반영하고, 다른 방식으로 공연 현장을 극적으로 묘사할 수 있는 고민을 할 것이다.

02.
위의 두 영상을 보면서 나는 나만의 브이제잉 디지털 파사드를 상상하곤 한다. 가로 세로가 60cm 정도 되는 모서리가 둥근 정사각형 형태에, 두께가 15cm 정도 있고, 벽걸이형이다. 소박한 사이즈. 벽에 거는 뒷면을 제외한 측면과 전면은 모두 디지털 LED. 측면 LED는 감질나게 음악의 하이라이트에서만 사용해야 한다! 혹시 누가 내 글을 읽고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하면 꼭 만들어서 알려주길 바란다.

가장 자주 공상하는 음악은 DatA의 Aerius Light, Breakbot 리믹스 버전. 1분 49초쯤 나오는 멜로디에서 측면 LED가 번쩍번쩍 빛나야 한다. 마치 꽃봉오리들이 순식간에 일제히 피는 것처럼.
Tron: Legacy의 OST 리믹스 버전 수록곡 중 하나인 Adagio For Tron (Teddybears Remix)도 좋은 공상 거리다. 굉장히 수학 교과서 도형을 소개하는 느낌과 어울린다. 여기서도 측면 LED는 레이저가 뾰뵤뵹 하는 부분에서만 검소하게 활용하는 것이 포인트!

03.
스탠리 큐브릭의 <2001>에서 웜홀을 타고 지나가는 장면을 위해 약에 취한 채로 영화관을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디지털 기술이 없던 당시에는 그런 오색영롱하고 꿈세계와 같은 시각 효과가 엄청난 충격이었다. <2001>의 웜홀 씬보다 더 화려한 영상을 끝내주는 음악과 같이 즐길 수 있는 현대의 공연장에서 술과 약에 취하는 사람이 많은 건 당연하겠지.

현실에서 상상할 수 없는 공간을 추상화된 이미지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꾸러기수비대>에서 알바트로스가 동화나라로 이동하는 장면과 <도라에몽>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가는 장면도 기억난다. 좀 단순하고 현실적이지만, <스타게이트>의 웜홀 장면과 <스타트렉>의 하이퍼드라이브 장면도 좋다.